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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UVELLE VAGUE 3



글. 이제현

누벨 바그(Nouvelle Vague), 그 새로운 파도 3부 : 누벨 바그 그 후

 

 

 

 이번 칼럼 시리즈의 1부와 2부에서 우리는 당대 프랑스, 나아가 전 세계 영화 예술계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온 '누벨 바그(Nouvelle Vague)'라는 사조가 어떻게 탄생하였으며, 이를 이끈 영화인들과 그들의 대표작을 통해 누벨 바그 영화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았다. 누벨 바그 시기는 비교적 짧은,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로 규정되지만 이 파도(vague)는 특정 시기를 넘어, 20세기 중반 격변하는 프랑스 사회상을 그려내고 있음은 물론, 오늘날의 작품들에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누벨 바그와 그 영화인들이 가진 힘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건은 바로 1968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68혁명'이다. 그해 초, 전 프랑스 사회를 동요시키는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는데, 당시 집권 중이던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 정부의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공동 설립자이자 운영자인 앙리 랑글루아(Henri Langlois)를 전격 해임한 것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émathèque Française)는 프랑스가 예술의 중심지로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한 과정에서 설립된 공간으로, 누벨 바그 시기의 젊은 세대는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토론하며 프랑스 영화의 발전을 이끌어 나갔다. 이처럼 프랑스인들에게 상징적인 공간이었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를 해임하고, 이로 말미암아 영화 예술계를 정부의 통제 아래에 두려는 의도에 반대하여 영화인들을 비롯한 지식인 계층은 대규모 시위를 일으키는데, 이때 프랑수아 트뤼포를 선두로 누벨 바그의 '젋은영화예술집단'에 속하는 감독들이 선두에 서게 된다.

 이 시위는 랑글루아의 복직으로 일단락되지만 같은 해 5월, 프랑스의 베트남 전쟁 참전에 반대하여 파리 낭테르(Nanterre) 대학 학생들이 일으킨 시위에 대한 정부의 탄압, 그리고 이를 규탄하고자 소르본 대학의 학생들이 광장으로 나온 사건을 기점으로 당대 만연한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를 타도하려는 ‘68혁명’이 전개된다. 혁명의 불꽃은 전 세계로 퍼져 반전 운동, 흑인 인권 운동, 여성 운동, 노동 운동의 형태로 이어졌으며, 동시대 예술은 더욱 대중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직접적인 탄압 대상이었던 프랑스 영화계는 이를 계기로 침체기와 동시에 '포스트 누벨 바그' 시기에 접어들게 된다.

 



[1], [2] 1968년 5월, 학생과 노동자로 구성된 68혁명 시위대의 모습

 


 이제 프랑스 영화는 누벨 바그의 연장선상에서 일상과 개인에 대해 탐구하는 동시에, 사회의 주변부에 더욱 주목하기 시작한다. 혁명을 기폭제로 한 이 '포스트 누벨 바그' 시기의 작품들은 이전보다 실험적인 측면을 보이는데, 당대 서구 영화계는 프리섹스 운동, 히피 운동 등 강력한 성 해방 운동의 물결에 휩싸인다. 프랑스에서는 장 외스타슈(Jean Eustache)의 1973년작, 『엄마와 창녀』가 이러한 시대적 조류를 일상적인 이야기와 함께 풀어낸 작품으로 언급되곤 하는데, 장 외스타슈는 에로틱한 장면 없이 등장인물들의 솔직한 대사만으로 성적 욕망과 갈등을 표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프랑스 사회에 대한 풍자까지 대사에 녹여냄으로써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1]

 19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 들어서며 프랑스 영화계는 TV라는 새로운 영상 매체의 등장, 할리우드 영화의 대중 장악력 등에 기인하여 또 한 번 위기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뤽 베송(Luc Besson)을 비롯한 장 자크 베넥스(Jean Jaques Beineix), 레오스 카락스(Leos Carax)와 같은 프랑스 영화인들은 미국 팝 문화의 영향을 받아 대중문화 속 다양한 코드를 반영한 작품들로 ‘네오 바로크(Neo-Baroque)’ 또는 ‘누벨 이마주(Nouvelle Image)’로 불리는 시기를 구축하기에 이른다.[2]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이미지를 특징으로 하는 누벨 이마주 영화는 자아도취증에 빠진 1980년대 젊은이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1986년 개봉한 장 자크 베넥스의 『베티 블루』는 화려한 영상과 독특한 음악으로 관객을 작품에 몰입시켰는데, 특히 이 감독은 각각의 영화에 하나의 특징적인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등장인물의 성격을 부각시키거나 추상적인 개념들을 표현하였기 때문에 『베티 블루』는 '분홍색'과 '노란색'의 영화로 불리기도 한다. 같은 시기를 대표하는 레오스 카락스 또한 이와 같은 효과를 사용하였고, 그의 작품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는 흑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명암대비를 통해 영상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후 『퐁네프의 연인들』(1991)에서는 센 강의 어둡고 푸른 이미지와 남주인공의 광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불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대비시켰다.

 


[3], [4] 장 자크 베넥스(Jean-Jacques Beneix)의 『베티 블루(Betty Blue)』(1986)와 레오스 카락스(Leos Carax)의 『퐁네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Neuf)』(1991)에서의 색채 사용

 


 한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히는 뤽 베송은 관객에게 풍요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랑 블루』(1988)에서처럼 빠른 카메라 움직임을 통하여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연출력과 『니키타』(1990)에서의 자극적인 미장센, 『레옹』(1994)의 개성적인 등장인물 설정 등은 흥행의 측면에서 큰 성과를 이끌어냈다.



[5] 뤽 베송(Luc Besson)의 『그랑 블루(Le Grand Bleu)』(1988)의 도입부에 사용된 카메라 움직임

 


 그러나 누벨 이마주 시기는 현대 영화사()의 시작점이 되는 누벨 바그 그리고 이어진 포스트 누벨 바그 시기와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적, 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든 프랑스 사회에서 혁명의 외침은 점차 잦아들었고, 이는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의 상실로 이어졌다. 예술계 또한 이러한 흐름을 피해가지는 못하였고, 결국 프랑스 영화계는 미국의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하며 만들어낸 유행을 뒤쫓는 입장이 돼버리고 만다. 사실 누벨 이마주를 대표하는 뤽 베송과 같은 프랑스 영화인들은 자국이 아닌 미국 땅에서 영화를 배웠고, 그렇기에 할리우드가 추구하는 대중적 흥행이라는 분명한 목표 아래 환상적이고 자극적인 세계를 그려내는 데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프랑스 영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한 독창적인 예술성을 잃어가는 듯한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누벨 바그의 명맥을 잇는 작품들이 성공을 거두는데, 2001년 개봉한 장 피에르 주네(Jean-Pierre Jeunet)의 『아멜리에』는 우리 주변에 실존할 법한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그녀의 주변에서 펼쳐지는 유쾌한 사건들과 따뜻한 사랑 이야기로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감독은 누벨 바그 영화의 주요 특징인 '소격 효과'를 활용하거나, 프랑수아 트뤼포의 『쥘 앤 짐』(1962) 등의 작품에 사용된 내레이션 기법 또한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한 편의 누벨 바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감독은 『쥘 앤 짐』의 대표 장면을 작품 속에 배치하기도 하였다.

 


[6], [7] 장 피에르 주네(Jean-Pierre Jeunet)의 『아멜리에(Le Fabuleux Destin d'Amélie Poulain) 』(2001) 와 실뱅 쇼메(Sylvain Chomet)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Attila Marcel)』(2013)에서 사용된 소격 효과

 

 2010년대에는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감독이 『무드 인디고』(2013)를 통해 독창적이고 참신한 미장센의 시도와 함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던졌으며, 같은 해에 개봉한 실뱅 쇼메(Sylvain Chomet)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아멜리에』와 같이 대중과 밀접한 내용의 플롯을 기반으로 평범한 등장인물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교차 편집하는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누벨 바그의 재현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의 특징은 환상의 세계를 등장시키지 않고도 다양한 실험적 요소를 통해 관객에게 무한한 상상의 여지를 제공하고, 다원화된 오늘날의 프랑스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8]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의 『무드 인디고(L' Écume des jours)』(2013)에서의 미장센 연출

 

 이처럼 프랑스 영화 예술은 1950년대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반 세기가 넘는 굴곡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역사를 되짚어보며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번 칼럼 시리즈의 주제인 누벨 바그 시대와 그 시대를 이끌었던 영화인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감상하고 즐기며, 토론하는 행위를 하나의 대중 문화로 자리하게 했음은 물론, 68혁명이라는 사회 변혁의 움직임을 이끎으로써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누벨 바그를 통해 정립된 현대 영화 예술의 정체성이 희미해져 가는 오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작품들도 좋지만 우리 주변의 이야기, 나아가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영화 예술계의 새로운 파도(누벨 바그)가 좀더 많이 일기를 소망해본다.

 



 

참고문헌


김호영, 『프랑스 영화의 이해』, 연극과 인간, 2003.

뱅상 피넬 외 4인, 『프랑스 영화』, 김호영 옮김, 창해, 2000.

장 피에르 장콜라, 『프랑스 영화사』, 김혜련 옮김, 동문선, 2003.

김남연, 윤학로,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통: 프랑스의 누벨바그」, 프랑스문화예술연구, 2007.

 


이미지 출처


레오스 카락스, 『퐁네프의 연인들』, 1991.

뤽 베송, 『그랑 블루』, 1988.

미셸 공드리, 『무드 인디고』, 2013.

실뱅 쇼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3.

장 자크 베넥스, 『베티 블루』, 1986.

장 피에르 주네, 『아멜리에』, 2001.


 

Notes


[1] 김호영, 『프랑스 영화의 이해』, 연극과 인간, 2003, 211쪽.

[2] 김호영, 『프랑스 영화의 이해』, 연극과 인간, 2003,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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