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CHARDIN'S KITCHEN. JEAN BAPTISTE SIMÉON CHARDIN(1699-1779)


글. 고연정

샤르댕의 부엌. Jean Baptiste Siméon Chardin(1699-1779)

 


 

복숭아와 서양배를 비롯한 여러 과일을 쌓아올리고 음식과 와인을 식탁 가득히 차려 놓았다. 식탁 아래와 위로는 검은 개와 앵무새 한 마리가 음식을 금방이라도 채 갈듯이 시선을 고정한 채다. 복숭아와 포도의 윤기는 금방이라도 만져질 듯 하고, 식탁의 3분의 2쯤 덮은 식탁보는 고이 접어 두었던 것을 펼친 듯 주름선이 선명하다. 실제와 현실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손색이 없는 이 작품은 1728년 Salon de la Jeunesse에 왕립미술원 입회작으로 <가오리>와 함께 출품하여 당선된 <뷔페>이다.

 


도판 1. 쟝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Chardin, Jean Baptiste Siméon), <뷔페 Le Buffet>, 1728, 194 x 129 cm, 캔버스에 유채,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 2019 RMN-Grand Palais (musée du Louvre) / Stéphane Maréchalle.

 


‘실제’와 ‘현실’의 재현이라는 말을 짚자면, 정물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란 일종의 원본이라면, ‘현실’은 ‘실제’를 포함한 ‘시대성’을 의미한다고 가정해 보겠다. 이 가정에 따르면, <뷔페>는 당시 그 식탁이 차려진 식탁의 풍경, 나아가 샤르댕의 ‘회화’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는 샤르댕이 직접 과일을 쌓아 올리고 개와 앵무새의 위치를 배치한, 그리고 식탁보도 그렇게 흘러내릴 듯 연출한, 그 상황을 현실을 표현한 회화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뷔페>에 등장하는 대상물들은 모두 샤르댕의 의도대로 그 자리에 있는 회화의 대상물이나, 동시에, 자연에서 온 대상물은 그 자체로 생과 곧 다가올 죽음을(먹혀짐 으로써, 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물화는 인간의 삶과 정신에 유기된 대상으로서 회화를 바라보게 한다. 그리스의 콜로소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동 가능한 다른 우상을 형체화 한 것에 비해 움직이는 아직 기둥과 고인돌, 거상 등을 뜻하는 콜로소스의 어원을 살펴보면, 문법적으로 생명체를 나타내는 성에 속하는 ‘콜(kol-)’에 있다는 것을 숙지한다. 즉, 콜로서스의 상징적인 가치에는 생과 사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콜로소스는 원리적으로 땅에 고정되어 있다. 민간신앙에서 콜로소스는 죽은 자를 대신하는 형상물로써 혼령이 그 형상을 취하여 결합되는 형태인 동시에 그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그 통로로 기능한다. 이는 여기에서는 영혼인 비가시적인 존재가 가식적인 콜로소스라는 형체와 결합함으로 가시적인 대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1]

 

샤르댕이 이러한 민간 신앙을 염두에 두고 정물화를 그렸을 논리적 관계성은 매우 적다. 그러나 상징적인 의미에서 이러한 추론을 통해 정물화가 내포하는 가치를 이해해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정물화의 정의를 집어 본다면 이러한 가정이 논리적으로 완전히 귀결되지 않는다 볼 수 는 없다. 정물이 뜻하는 바가 언어 그대로, 움직일 수 없는, 정지된 자연 대상을 뜻하며,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죽은 자연(Nature-morte)라 명명한 것을 떠올리며, 회화의 배경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회화의 위계에서도 낮은 자리를 차지했던 정물이 독립된 회화로 용인되기 시작한 그 시대적 배경을 떠올려 본다. 시작은 15세기 구교와 신교의 갈등과 종교 개혁, 그리고 흑사병으로 삶과 죽음이수없이 교차되던 시기였다. 정물화의 핵심 알레고리인 바니타스(Vanitas)는 구약 성경의 전도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라는, 삶의 허무함과 죽음의 필연성, 즉 ‘필멸성’에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물화는 동시대의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의 실제적인 재현이 우선되야 한다. 이러한 선행 조건이 있어야만, 삶의 필멸성과 그에 연관된 윤리를 재현의 대상에 함의하게 되어, 그리는 이와 보는 이로 하여금 정물화의 가치와 힘을 느끼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도판 2. 쟝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Chardin, Jean Baptiste Siméon), <가오리 La Raie>, 1728, 114 x 146 cm, 캔버스에 유채,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 2010 RMN-Grand Palais (musée du Louvre) / Stéphane Maréchalle.

 


같은 맥락에서, 소쉬르가 기호학은 ‘사회에 존재하는 기호의 삶을 연구하는 과학’이라 정의한 것을 빌어, <뷔페>에서 과일과 같은 자연물과 <가오리>에서 가오리는 음식으로 서의 기표이자, 사람이든, 개든, 앵무새든, 고양이든 어떤 대상에 먹혀질 죽음, <가오리>에서는 처참하게 난도질 된 가오리 등은 죽음이라는 기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소쉬르의 기호학이 가지는 언어성을 차치하고라도, 퍼스의 기호학을 빌리자면, 일종의 죽음의 과정을 의미하는 지표적 기호로써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샤르댕의 회화에서 지표적 기호에 대해 서술하라면 과일을 보는 순간 수확되어 식탁에 오르고, 샤르댕에 의해 회화를 위한 연출의 대상물이 되기 까지의 일련을 과정과 과일로서의 물리적 현존을 드러내는 지표적 기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가능하기 위해 실제적인 재현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디드로는 앞서 1761년의 살롱에서 샤르댕의 정물화가 이러한 두가지 측면을 강조하는데 첫번째가 자연에 가장 충실한 모방이며, 두번째 대상물이 가지는 일상성이다. 그 뒤로는 색의 마술로(la magie des couleurs) 표현되는 일련의 대상물의 실제성을 찬양하는 구절이라 볼 수 있다.[2] 그러나, 디드로의 서술에서 자연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샤르댕의 뛰어난 회화적 기술에 대해서만 파고들기보다, 왜 디드로가 그러한 기술을 찬양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어야만 정물화가 가지는 진의에 대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마술의 한 종류로 표한 환영(illusion)의 효과로 관객들의 회화에 대한 몰입 등을 서술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전에 정물화에서 재현이 가지는 진의를 먼저 숙지해야 하는 것이다. 

 


도판 3. 쟝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Chardin, Jean Baptiste Siméon), <고양이와 가오리, 굴, 빵 Chat avec raie, huitres et pain>, 1728, 79.5 x 63 cm, 캔버스에 유채,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Madrid.

 


샤르댕이 그린 정물화의 배경이 유독 부엌인 것도 삶에 직결하는 식(食)과의 관련성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난도질 된 가오리는 우리에게 ‘삶’을 주는 부엌에서 ‘죽음’이 공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살아있는 고양이는 생선을 탐내며 이러한 맥락을 더욱 강조하는 대상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제 샤르댕의 정물화를 다시 주시하면, 우리가 그 작품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꼈던 그 감정, 디드로가 ‘마술’로 칭하기 까지 한 감정의 실체에 대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장 피에르 베르낭, 역. 박희영.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유. 대우학술총서. 아카넷. 2005..

Denis Diderot. Salons. Gallimard. 2008.

  

도판출처

 

각 도판 하단에 명기

 


 

Notes


[1] 콜로소스에 대한 자세한 서술로는 다음 서적을 참고. ‘제 5장 모사물에서 이미지로’ in 장 피에르 베르낭, 역. 박희영.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유. 대우학술총서. 아카넷. 2005.

[2] Denis Diderot. Salons. Gallimard. 2008, p. 115 - 117.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