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와 영화 사이: 줄리안 슈나벨의 반 고흐
-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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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선혜영

Number 6 (Van Gogh Self-Portrait Musee d'Orsay, Vincent), 2020
슈나벨, 고흐를 다시 보는 방식
반 고흐가 생레미 드 프로방스의 요양원에서 그린 자화상을 슈나벨이 다시 그릴 때, 그는 단순한 차용을 넘어 고흐가 남긴 감각과 경험을 표면 위에서 재구성한다. 이 표면은 전통적 캔버스가 아니다. 깨진 접시 조각이 거칠게 겹겹이 붙은 판넬 위에서 형체는 부서진 채 살아난다. 고흐의 초상은 이 질감 위에서 깨어나, 관람자는 고흐의 눈빛보다 먼저 표면과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슈나벨의 화층에서 표면은 감각과 사건이 머무는 장이자, 시간과 기억이 압축된 공간이며, 질감은 더 이상 평면이 아닌 사건으로 현존한다.
반 고흐를 주제로 한 기존 영화들이 그의 삶과 심리를 중심으로 서사를 엮는다면, 슈나벨은 고흐를 심리적 대상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는 회화에서 경험된 세계를 통해 지각을 탐구하는 존재로 접근한다. 영화 “영원의 문에서, At Eternity’s Gate” (2018)에서 흔들리는 카메라, 초점 이동, 반복되는 고흐 얼굴의 클로즈업은 내적 상태를 보여주는 동시에, 고흐가 세계를 감각하고 구성한 방식을 관객이 체험하도록 만드는 장치다. 붓질과 색면이 캔버스 위에서 물질적 사건으로 응축된 회화는 영화 속에서 시간과 시점으로 재구성된다. 관객은 고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붓질과 색채가 만들어낸 질감을 시간 속에서 느끼며, 고흐는 단순한 인물을 넘어 지각과 경험을 체험하게 하는 장치로 존재한다.
슈나벨의 회화 세계: 표면, 파편, 질감
슈나벨은 1980년대 뉴욕 신표현주의 neo-expressionism 속에서 붓질과 물질의 과잉, 표면과 질감의 탐구를 통해 회화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감각적 사건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실험했다. 신표현주의는 모더니즘의 절제와 구조적 형식을 넘어, 회화를 신체적·감각적 체험으로 환원하려는 시도였다. 슈나벨의 실험은 이 지점에서 극단적으로 구현된다.
1978년 바르셀로나에서 그는 가우디의 모자이크를 보고, 단순한 장식적 영감을 넘어 조각적 결합을 통한 이미지 구성 가능성을 발견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접시를 사들여 깨뜨린 뒤, 파편을 판넬 위에 부착하고 물감을 덧씌운 〈The Patients and the Doctors〉(1978)를 제작했다.

The Patients and the Doctors, 1978
슈나벨의 플레이트 페인팅(plate painting)에서 접시 조각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캔버스를 대체하는 표면이자 사건의 장으로 작동한다. 원래 기능적 사물이었던 접시는 깨진 채 재조립되어 이미지의 기초가 되고, 파편은 회화와 현실, 시각과 촉각, 사건과 기억 사이의 관계를 다시 구성하는 제스처가 된다. 관람자는 화면을 읽는 것이 아니라 표면을 더듬고 질감을 감각하며 사건을 경험한다. 슈나벨에게 회화는 시각적 창이 아니라, 몸과 지각으로 참여하는 촉각적 지형이다. 붓질과 파편, 물질의 중첩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시간의 흔적이며, 관람자는 그 안에서 이미지와 사건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체험한다. 슈나벨 회화의 표면은 고정된 그림이 아니라, 시간과 지각을 담은 살아 있는 장이며, 표면·파편·질감은 회화가 지각적 체험이자 사건적 장치로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회화에서 영화로: 지각의 번역과 매체의 확장
슈나벨에게 영화는 단순한 참고 대상이 아니라, 회화적 탐구를 시간과 시점 속으로 확장하는 매체적 장치였다. 그는 초기 작업부터 회화를 시네마적 사유와 연결하며, 화층 위 사건과 질감을 시간적 경험으로 변환했다. 영화는 회화를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화층에서 실험된 감각과 시간적 문제를 다른 매체로 번역하는 도구이다

영원의 문에서 At Eternity’s Gate (2018)
영화 “영원의 문에서 At Eternity’s Gate” (2018) 에서 카메라는 흔들리고 초점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고흐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 한다. 이는 단순한 인물 표정 촬영이 아니라, 회화적 질감을 시간 속 사건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월리엄 데포우가 연기한 고흐의 얼굴은 화면이 터져나갈 듯한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잡으며 롱테이크로 이끈다. 특히 의사나 신부와 대화할 때 그의 깊은 주름과 미세한 떨림이 집요하게 포착되게 한다. 슈나벨은 이러한 배우의 얼굴을 마치 깨진 접시 조각들이 겹겹이 쌓인 자신의 캔버스 표면처럼 다루며, 관객은 대화의 내용을 듣기 전에 화면을 가득 채운 인간 피부의 질감과 세월의 흔적이라는 물리적 실재를 먼저 마주하게 된다.
관객은 화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흐의 시선과 숨결, 얼굴 근육의 떨림까지 포함된 감각적 사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붓질과 색면, 캔버스 위 겹겹이 쌓인 질감은 카메라 시점과 함께 살아 움직이며 시간 속 사건으로 재현된다. 클로즈업과 시점 변화, 고흐의 독백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세계를 감각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영화 속 고흐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회화적 사건과 영화적 사건을 연결하는 지각적 장치가 된다. 붓질과 색채의 떨림, 카메라 흔들림과 노출 변화가 얽혀 하나의 복합적 사건을 만들고, 회화의 정적 질감과 영화의 시간적 경험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 관객은 보는 것을 넘어 느끼고 체험하며, 고흐가 경험한 세계 속으로 스며든다.
회화와 영화 사이, 고흐를 통과하다
슈나벨이 안내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더 이상 고흐의 비극을 구경하지 않는다.대신 그의 붓질이 지나간 거친 궤적을, 깨진 접시 파편이 일궈낸 날카로운 지형을 온몸으로 통과한다. 회화와 영화 사이, 슈나벨의 감각들은 고흐의 불행한 삶의 서사를 넘어, 매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실재감을 선사한다.캔버스 위에서 날카롭게 튀어나온 접시 조각은, 영화 속 초점을 잃고 요동치는 카메라와 만나 하나의 큰 체험적 사건이 된다. 슈나벨에게 예술은 대상을 매끄럽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회화의 표면과 영화의 시간 속에서 고흐가 마주했던 세상의 무게를 물리적으로 응축하는 과정이다. 이 불친절하고 압도적인 감각의 덩어리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고흐라는 인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겪어낸 생의 요동을 슈나벨이 설계한 거친 감각 속에서 고흐와 함께 한다.



